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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국어사전에서는 '허심탄회'를 이렇게 말합니다.

 

허심탄회[虛心坦懷]

虛 - 빌 허

心 - 마음 심

坦 - 평탄할 탄, 너그러울 탄

懷 - 품을 회

 

1. 따로 품은 생각이나 거리낌이 없이 솔직하다.

2. 품은 생각을 터놓고 말할 만큼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고 솔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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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누군가와 너무나도 편안하고 즐거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파트와 한두 블록 사이에 그분이 사는 아파트가 있기에 굳이 만나려고만 한다면 못 만날 것도 없지만, 사람 사는 게 어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잖습니까?

 

죽일 놈의 이 코로나 상황도 한몫했었고요, 그분은 그분대로 나는 나대로 저마다의 사정이 있어 우리의 만남이 자유롭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그 인연이 참으로 깊습니다.

 

노사를 떠나 늘 함께했던 직원을 통틀어도 일백 명 안짝이었던 동네 슈퍼 같기만 했던 자잘한 공장을 떠나서 그래도 80년대 말 그해엔 그 쪽수가 수백을 지나 천 단위를 넘나들 만큼의 큰 직장에 들어갔는데 그분이 거기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계셨습니다.

 

그 이름 박^ 종^ 현^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만남! 그리고 인연!

 

그 만남과 인연의 깊은 골에서 서로에게 우린 때때로 '불꽃'이었고 더러는 '솜사탕'이었답니다.

 

그랬던 우리에게 각각의 사는 방식과 물리적 터전이 멀어지니까 과거는 그저 흐르는 시냇물처럼 소소한 것이 돼버렸고 만남에 없었던 만큼 그리움이 커지데요.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던가요?

그 비유가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사는 동안 내내 그분과 대척점에 섰던 찰나에 대한 '회한'이 좋았을 때도 더 따사로이 감싸지 못한 거에 '회한'이 졸졸 흐르던 시냇물에서 거대한 태풍의 풍랑으로 돌변해 가슴을 짓누르데요.

 

그럴 때마다 그 풍랑 잠재우려고 그분을 만나 밑도 끝도 없는 술자리에 들었었지요.

 

[노동] / [민주주의] / [진보 정치] / 둘만의 격렬한 토론 - 둘만의 격렬한 합의….

 

격렬하게 그러는 사이에 나는 되먹지도 않게 진보 진영 모두에게 [만인의 우상]으로도 불리는 '체 게바라'도 마구 싸잡아서 비판했었습니다.

 

술에 취한 탓이겠지요.

우리 땅에서 '진보의 꽃'이라고 해도 무방할 '단 병호 선생님'께서 내가 바라는 정치적 소신과 다른 길을 택했다고 했을 때 그날도 또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답니다.

 

한번은 마산 창원 쪽의 어떤 형님이 '민주당'의 모 핵심 인사 밑으로 들어가서 일한다는 소식에 그날도 불이 나서 인터넷 매체에서 떠들었는데 '파독 광부' 출신의 또 다른 형님한테 혼쭐이 났었답니다.

'정치적 소신은 그 당사자가 바라는 대로 취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지 자기가 봐선 딱 그렇게 했던 건데 도대체 뭐가 잘못됐다는 거냐!' 그러더라고요.

 

그날 그렇게 혼쭐이 났으니까 매사에 신중하게 조심했어야 했는데도 우리의 [박종현 형님]을 만나면 그것이 잘 안 지켜집니다.

 

무려 네 살이나 많은 우리의 형님!

 

시골 중학교 다닐 적엔 내가 우리 동년배보다 한살이 더 많았는데 그런 나보다 무려 다섯이나 많았던 형님께서 1년 선배로 중학교에 다녔었습니다.

그랬던 그 형님이 고등학교에선 저와의 동년배로 거기서 더 나아가 같은 반에 묵었던 집은 같은 집에서 방은 따로였지만, 자취 생활 함께하면서 고등학교 다니기도 했었죠.

 

그 형님 '5.18 민중항쟁 때' 밖에 나가면 뒈지니까 절대로 나가지 말라고 엄명하셨기에 자취방이 있던 자리의 제방 너머 시내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게 별로 없어요.

 

몰래몰래 나갔다가 학교 선생님께 혼쭐났었고, 트럭·버스 타고 다니면서 '향토예비군 가'등을 부르면서 난간 두들기는 걸 멀찌감치에서 봤었죠.

 

그랬기에 우리의 형님한테 나이에서는 터울을 덜 느꼈어요.

 

너무나도 편합니다.

 

같이 있으면 궂었든, 좋았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어져요.

 

그렇게 모든 걸 다 털고 살았던 그 한때가 벌써 10년이나 지났습니다.

 

당분간 술을 안 먹기로 한 그날로부터 지금이 누적하는 웹 문서에서는 '오늘은 그날로부터 대략 10년 10개월 6일째 되었다'라고 쓰였습니다.

 

어쨌든 어제는 간만에 형님이 밥이나 한 끼 하자며 불러내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만나자 나는 곧바로 완전히 [무장해제]!!!

 

이 글의 처음에 '허심탄회[虛心坦懷]'를 들먹였죠.

 

형님을 생각하면 두말하지 않고 제 가슴에서 그런 단어로 들어섭니다.

 

막상 형님한테 드릴 거라고 티끌만큼도 없지만, 저에게 정신적 자산이라도 있다면 그 모두를 형님한테 드리고 싶습니다.

 

별건 아니지만, 뭐 했든 간에 오늘은 여기서 끝^

 

형님!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