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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끝 무렵의 어느 날엔 먼저 가신 아버님이 자리했었다.

 

 

1976년 늦은 가을이 저물어 가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운동장에서 곧 있을 '가을운동회' 총연습이 있었던 날이었다.

 

모두가 운동장에 집결해서 맹연습에 빠졌었는데 교정 스피커에서 난데없이 내 이름을 찾으면서 어서 빨리 구령대 앞으로 오라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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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령대 뜻

 

AI 개요

구령대는 운동장 한쪽에 서서 전체 조회를 하거나 훈시하는 데 사용되는 높은 단상으로, 주로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교장이나 교감이 높은 위치에서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훈육하는 용도로 쓰여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최근에는 학생들의 안전사고 우려와 함께 권위주의 문화의 잔재로 인식되어, 많은 학교에서 구령대를 제거하고 놀이터나 다른 교육 공간으로 바꾸는 추세입니다. 

 

 

구령대의 의미와 상징

 

높은 단상: 운동장 중앙에 있는 높은 단상으로, 훈시나 조회 시 높은 위치에서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권위의 상징: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교장이나 교감이 구령대에 서서 학생들에게 훈시하는 모습에서 권위의 상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일제 잔재 논란: 일제강점기 때 도입된 시설로 여겨지며, 권위주의적 문화와 함께 현재는 시대에 맞지 않는 잔재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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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가을운동회 총연습이 있는 날이었기에 책보(책을 싸는 '보자기')도 없이 등교했던 날이었다.

 

어쨌든 나를 찾았기에 아무 사정도 모르고 재빨리 뛰어갔더니 거기 동네 친구 놈의 작은 형께서 서 계셨다.

내 선친께서 위독해서 우리 집의 장남이기도 한 나를 데리러 왔다는 거였다.

 

다른 사람 자전거를 몰래 타본 적은 있었어도 거기 신사용 자전거 짐칸에 앉아 운전자 허리를 꽉 잡고 타본 적은 그날이 처음이다.

바닷가와 가파른 산을 깎아 만든 울퉁불퉁한 찻길에서 어찌나 내달렸든지 엉덩이가 몹시 아팠지만, 거기 돌볼 겨를이 없었던 시간대였다.

 

나중에 입학한 중학교도 그랬지만, 거기 초등학교도 학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마을이 우리 동네였기에 위독한 아버지를 두고 나를 데리러 온 그 형님 마음이야 오죽이나 다급했을까?

 

부랴부랴 집에 찾아 들어갔는데 다른 마을에 살았던 친인척을 비롯하여 마을 사람 상당수가 그 좁은 마당에서 웅성대며 섰더라.

 

지역 병원(전라남도 고흥)에선 더는 손 쓸 수 없다기에 겨우겨우 택시 잡아서 광주까지 찾아갔건만, 광주의 대형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며 받아주질 않았더란다.

그렇게 이미 송장이 다 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온 상태에서 누가 봐도 '임종'이 임박했기에 그 마지막을 지켜볼 내가 필요했던 모양이더라.

 

그 아버지 방 안에 누웠는데 호흡이 실제로 없어 보였어.

 

내가 방에 들어가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겠다며 이내 모두가 우리 집에서 떠나갔었지.

숨을 안 쉬었기에 나 역시도 감흥 없이 앉아서 아버지를 내려다보는데 전혀 숨을 안 쉬는 건 아니고 거의 5분 만에 한 번꼴로 엄청난 크기로 숨을 내뱉더군!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끅!'

 

그것은 마치 그 시절에 방영했던 인기 반공 드라마 '전우'에서 우리 국군이 소리 없이 적군에게 다가가서 목을 비틀었을 때 나오는 효과음과도 일치했거든.

 

그렇게 돌아가시는 모양새가 나는 신기하기도 하더라!

'어쩌면 저렇게도 똑같을까???'

 

신기한 건 둘째치고라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마냥 감상에 빠져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대략 10여 초^ 어쩌면 그보다 더 빨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문밖에서도 적당히 알아채게끔 적당한 크기로 외쳤었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얼마 전에 어머니께 그 당시 이야길 꺼냈더니 마치 그 순간에 어머니도 나랑 아버지 곁에 함께 했었던 거처럼 말하는 거 있지!

 

후후 그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사람은 오로지 나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그때 밖에 대고 말하지 않았으면 잠자리에 들어서나 알았을 것을….

 

40대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우리 아버지!

내게 임종을 알렸던 그분의 나이 겨우 마흔셋이었다.

 

그 시절에 겨우 열넷이었던 내가 어느덧 예순셋이나 됐다.

 

 

- 아버지~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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