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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달에 윤년 들었네!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본 컴퓨터 달력에서 이달(2월)에 29일이 들었음을 본다.
- 오^ 윤년의 달력이라! -
그걸 보면서 아주 오래된 추억에 젖어 본다.
1981년이 아니면 그다음 해였을 텐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촌에서 광주로 올라와 유학하면서 그 한 시절에 난 컴퓨터도 없는 컴퓨터 학원에 나다녔었지.
학원에 컴퓨터가 없었지만, 그래도 할 건 다 했었어.
두꺼운 판지에 컴퓨터 자판 모형을 복사해서 자판 크기로 자른 종이를 책상에 올려놓고 두드리는 연습도 했고 프로그램 짰던 걸 시트지에 옮겨 표시하기도 했었지.
그따위를 배웠던 어느 날엔 '코볼' 과목에서 달력에서 요일 맞추는 프로그램을 과제로 내줬었지.
시트지를 주면서 말이야.
정말 어렴풋해. 내 기억이 얼마나 정확할지-
그것 요일 맞추는 데 윤년 계산이 필수였지.
헷갈려서 정확할진 모르겠지만, 윤년 / 4년에 한 번씩 있고 백 년 주기에는 없는데 또 사백 년 주기로는 다시 생기는 양력 2월의 29일을 윤년 해로 기억하거든.
네이버나 다음 포털 쳐보면 다 나오겠지만, 내 추억이 훼손되는 건 싫다!!!
그 과제 받아와서 밤새 대갈통 굴려서 시트지에 기록하고서 다음 날 또는 그다음 날이 등원하는 날이면 학원에 제출했었지.
그 시절 우리를 가르쳤던 학원 선생 중 누군가는 '카이스트 출신'이라고도 했어.
그 이름을 지금은 뭐라고 부를지도 모르지만, 학원에서는 그렇게 말했거든.
제출한 시트지 키 펀치 배우는 원생들이 OMR 카드에 옮긴 뒤 구멍을 내서 컴퓨터가 있는 곳에 가져가 그 카드를 어떻게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를 뽑아왔었지.
그렇게 나온 프린터 물 받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제대로 프로그래밍 못했다면 받을 수도 없는 과제였으니까-
그 당시 학원이 있는 '유동'의 '광주고속 터미널' 앞에서 '무등경기장'이 있었던 '신안동' 부근까지 걸어서 나다녔는데 그 중간쯤의 너른 길 한쪽에 'DDD 공중전화 부스'가 있었지.
- 아! 추억의 공중전화 DDD!!! -
시골에서 함께 자랐던 그 시절의 내 여친은 중학을 마지막으로 더는 상급학교에 오르지 못하고 서울에 돈 벌려고 떠났던 때야.
보랏빛 향기가 펄펄 끓었던 그 시절 그 나이대의 우리^
그런 우리의 뜨거움은 너무나도 먼 거리 탓에 이따금 주고받는 꽃 편지로 대신했었지.
그리고 나는 백 원짜리 은전이 생길 때마다 모아뒀다가 그 학원 가는 길에 'DDD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갔었어!
- 아!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읍 지금 3리^^^ -
- 내 여자 친구가 어떤 날은 내 생각하다 그만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 찔렸다고도 했거든. -
그 시절의 그 여친과 나는 소설 같은 가정사(우리 어머니 과부 / 여친의 선친이 홀아비 됐던 시절 / 그 두 분 매치 시도의 불발!)와 얽히면서 모든 게 어그러졌지.
아! 세월이란 놈 참으로 무심하도다!!!
그 깊은 사연들을 세월이란 놈은 어떻게 다 삭였을 고??? 허허허^^^
~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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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고3이었을 성싶다.
학원으로는 나중에 합류한 반 친구 [안병위]가 있었고-
학교에서 엄청나게 뺀질뺀질했던 놈이 있었는데 그놈이 내 자취방으로 막무가내 들어온 통에 함께 합숙(?)했거든-
그놈하고 학교에서 3학년 졸업 전에 미리 나가는 실습(취업)생으로 맨 처음 직장에 나갔을 때 함께 그 공장에 다니기도 했었지.
이쪽(운암동, 신안동, 임동-)에서 광천 대교를 건넌 뒤 천변길 타고 쭉 내려가면 그 시절은 시내버스 17번 종점 부근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유스퀘어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자리 부근에 폐지를 가공해서 다시 종이로 생산하는 폐지 재생 공장(삼성 제지)이 있었는데 우리 함께 다녔지.
온갖 폐지를 따뜻한 물로 다시 불려서 종이로 찍어내는 과정이 거기 들었는데 너무나도 먼지가 심했어.
그렇게 첫 직장을 다니다가 나는 좀 더 나은 공장으로 이직했는데 그 공장은 학교 책걸상 만드는 공장(광주광역시 본촌공단 / 한진공업사)이었거든.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그런 책걸상이었지.
철제 몸통에 매끈한 베이어 합판을 붙여 책상도 만들고 걸상도 만들었던 그런 공장이었거든.
그렇게 만든 물건들 조달청에 납품하면 조달청에서 각 학교에 배분했었나 보더라고-
나는 거기서 학교를 벗어나 처음으로 전기용접의 참맛을 익혔지.
일주일 중 토요일까지 엿새를 꼬박 일했던 그 시절 한 날에 문득 맨 처음 다녔던 '삼성 제지' 공장이 떠오르더군.
- 거기 가서 내 월급 내 첫 월급 받아와야지! -
내 나름으로는 큰맘 먹고서 거길 찾아갔었지.
- 응. 함께 다녔던 친구한테 갖다주라고 이미 줬는데….-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공장 다녔던 몸값이 날아갔었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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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투쟁가
백무산 작사
김호철 작곡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백골단 구사대 몰아쳐도 (꺾어) 꺾어버리고 하나되어 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행동하는 진짜 노동자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아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 뿐이다
수천의 산맥 넘고넘어 (망치) 망치되어 (죽창) 죽창되어
적들의 총칼 가로막아도 우리는 기필코 가리라
거짓 선전 분열의 음모 (밟아) 밟아버리고 하나되어 나간다
노동자는 노동자다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진짜 노동자
마침내 가리라 자유와 평등 해방의 깃발 들고 우리는 간다
아아 우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 뿐이다
원래 노동자시인 백무산이 쓴 시에 1989년에 깃발가,
파업가와 같은 전투적 투쟁가를 많이 작곡한 김호철이 곡을 붙인 것으로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의 노동자권리 향상,
그리고 인권향상을 위한 집회를 위한 노래로 만들어졌다.
당시 운동권에서 널리 퍼져있던 '전투적 조합주의'의
영향을 꽤 많이 받은 노래로 백골단, 구사대, 죽창 같은
전투적인 가사가 많이 쓰이는 것도 이때문이다.
물론 당시 백골단을 위시한 공권력이 워낙 노동자들을 짓밟아왔으니 그럴만도 하다.
이 노래의 영향은 매우 커서 90년대 중엽까지도 대학가에서는
전투적 조합주의와 노학연대활동이 주류가 되어왔다.
이를테면 대학생 활동가가 위장취업해서 공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세포조직을 만든다던가, 야학활동같은 것들이 있었다.
몇몇 학과들은 과가로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가령 중앙대학교 철학과의 과가가 이 단결투쟁가였다.
민중가요에 있어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 대중음악을 연구한 책들의 저항가요 파트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노래.
당시 백무산과 김호철 모두 공장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고,
기존의 민중가요는 구전가요나 노가바(노래가사 바꿔부르기),
대학생들이 만든 노래가 주류였다.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가 만든 최초의 민중가요.
※ 출처: https://blog.naver.com/adieulescons/223273698857
https://youtu.be/eEc6LFOI8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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