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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다 껍데기 이불을 캐시미어 껍데기 이불로 바꿉니다.

 

훌떡 벗고 잠들기에 여름철에도 새벽이면 썰렁했습니다.

그래서 직전엔 덮지 않더라도 나중을 위하여 깔아둔 담요 말고도 이불 하나를 더 펼치곤 했었거든요.

물론 날 더울 땐 펼쳐서 한쪽으로 밀어붙여 놓고 잠들었지만, 요즘 들어선 제법 쌀쌀하기에 아예 그 이불을 덮고서 잠이 듭니다.

 

여기서 그 이불이란 다름이 아닌 사시사철 저와 함께하는 얇은 '다우다 껍데기가 감싸인 이불'을 말합니다.

이거 너무나도 얇기에 춥지도 덥지도 않고 제겐 딱 좋았어요.

 

그런데 이게 너무나도 미끄러워요.

20여 년 전 큰 장애 입은 뒤 산길을 타며 막 걸음마 연습할 때도 수도 없이 자주 넘어졌던 이유가 제 한쪽 발이 나머지 발뒤꿈치에 걸려서 넘어질 정도로 평형을 못 잡고 몸 중심이 흐트러진 몸인데 이런 몸에 미끄러운 다우다 이불로 잠자리한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되겠습니까?

 

사실 몇 년 전에 엄지발가락이 통째로 빠졌을 때도 그 처음은 무거운 침대를 한쪽으로 당기려다가 그 침대에 발톱이 걸려 빠졌었는데 얼마 전에 그 발가락 다시 빠졌던 건 순전히 이놈의 이불에 미끄러져서 중심 잡으려다 2차 사고(단단한 물건에 발톱이 걸려)로 이어져 결국은 예전처럼 통째로 빠졌던 겁니다.

 

어제저녁 늦은 시간까지 노닥거리다가 새벽이 다돼서야 잠이 들었죠.

잠들기 직전에 우리 어머니 그랬습니다.

 

'아이고! 산소에 가져가려고 사다 놓은 건데 어떤 놈이 그걸 처먹고 이렇게 빈다는 말이냐!!!'

그 소리 듣자마자 찔렸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이 월요일인데 동생이 어쩌면 회사에 갈지도 몰라'

그런 생각에 어젯밤 늦은 시각에 밥솥에 얼마 남지도 않은 밥 덩이 대부분을 제가 비웠기에 쌀이라도 앉혀(불려) 놨다가 나중에 취사 눌러서 해 놓으려고 그랬거든요.

 

다짐이 그랬기에 조심조심 설거지하고 난 뒤(늦은 시각이라서 아래층엔 시끄러울 수도 있을 테니까) 막 방으로 들어오려는 순간 김치냉장고 위쪽에 '웬 포도 덩이 작은 사과 상자(열두 개가 담겼었음)가 보이는 겁니다.

'아니 이게 웬 떡이냐! 동생이 나 먹으라고 사다 놨는데 내가 방에서 나오지 않으니까 녀석이 그냥 들어간 모양이군!^!'

 

알도 굵고 '사과대추'라고 써진 걸로 봐서 아마도 그건 '씨 없는 포도'로 여겨졌습니다.

- 직전에 밥도 먹었겠다 / 이걸로 '후식'해야지!!!~ -

포도송이 하나에서 몇 알을 떼고 사과 상자도 손가락 푹 찔러서 그 포장을 벗긴 뒤 자연스럽게 사과 둘도 꺼냈던 겁니다.

 

그런 뒤로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오늘의 이른 새벽) 우리 어머니 밥하려고 밖으로 나와서 그 참담한 상황을 봤던 거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방문 틈으로 불빛이 세 테니까 우리 어머니 제가 안 자는 것 뻔히 아시겠지만, 저는 그냥 잠자는 척했어요^^^

 

그러지 않아도 우리 어머니 어젯밤에 시골(외할아버지 / 외할머니 / 외삼촌 / 아버지 산소가 있는 고향길)에 내려가지 않겠냐고 물었거든요.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꼭 가봐야겠다'라고 그랬거든요.

편하고 자유롭게 다녀오시라고 말씀 전하면서 나는 안 간다고 했었으니까 / 그 사실을 깜빡 잊었기에 그 사달을 냈지만, 제가 좀 뻔뻔하고 비겁했나요???

 

그렇게 이것저것 노닥거리다가 동이 틀 무렵에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마도 두 시간에서 세 시간쯤 잤을 겁니다.

 

어느 순간에 눈을 떠 보니 눈앞의 텔레비전 겸용의 모니터가 켜졌습니다.

사실은 잠들기 직전에 컴퓨터에 연결한 링크로부터 '전원일기'를 보려고 했었거든요.

 

그랬는데 그게 그것 편성표에 나온 대로 찍으면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그런 거가 아녔습니다.

저는 여태 그렇게 알았는데 '이 시간은 MBC M박스에서 내보낸 드라마가 없습니다.' 그러네요.

 

그제야 어떤 회차 보고 나면 다음 날은 그 회차에 이어 연속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십여 회차나 건너뛰었던 사실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습니다.

제가 많이 볼 때는 그날 여섯 일곱 차를 연속으로 방영한 걸 봤었거든요.

아마도 그 연속 방영물이 끝난 회차부터 다음 날에 이어지니까 그렇게 뛰었나 보네요.

 

그렇게 '전원일기'를 못 보게 되니까 '천 원짜리 변호사'라도 보려고 했었는데 정작 보려고 했던 걸 놓치니까 그놈에도 관심이 시들어졌나 봐요.

그런 상태로 오늘 아침에 잠이 깼어요.

 

리모컨을 찾아 '모니터 겸용의 텔레비전'을 끄려는데 그놈은 또 어디로 갔는지 안 잡힙니다.

인제는 뒤척뒤척 잠자리에서 일어날 참이었어요.

 

바로 앞에 텔레비전이 있기에 그 좁은 틈바구니에서 몸을 이리저리 틀면서 일어나려는데 어떡하다가 그놈의 이불이 밟혀서 미끄덩하고 맙니다.

얼른 다른 발을 디뎌서 자세를 바로잡으려 했는데 '꽈당 쾅쾅 읔!!!^^^!!!' 제대로 안 됐습니다.

 

육중한 몸이 벌러덩 뒤로 넘어지면서 등 쪽에 뭔가가 푹 박힌 것 같았는데 어지러움 / 통증 / 아득함이 눈 앞을 가립니다.

아무래도 척추가 부러진 것 같군! 내 생애 여기서 끝나나! 싶었어요.

 

그렇게 넘어지면서 굵은 신음을 토했지만, 이 집엔 모두 시골에 내려가고 아무도 없이 나 홀로 있으니까 죽음도 나 홀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말기 암 환자도 그 마지막 순간에 잠깐은 멀쩡해진다'라고 그렇잖아요.

내 정신이 그 아득함에서 점차 맑아지는 건 이 순간이 정녕 그 마지막이기에 그러나 싶었습니다.

또 그렇게 믿고도 싶었습니다.

 

- 방문도 다 잠겼는데 내 시신을 어떻게 찾아내지 -

- '등골 부러진 몸에 발가벗은 시체!' 죽는 마당에 그게 창피했어요 -

 

바로 앉을 수도 일어설 수도 없었는데 사력(죽을힘)을 다해 일어났어요.

그러고는 잠자리를 개기 시작했지요.

 

- 숨은 가쁘지 / 그러다 보니까 가래가 차서 기침은 나오지 / 기침이 나니까 허리는 부러질 것 같지 -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버티면서 이부자리를 정리했지요.

 

[어^ 내가 해냈어! 이러다 내가 안 죽는 거 아냐!!!]

바로 걸을 순 없었기에 허리 빳빳하게 세워서 일 처리했던 여태까지의 과정 그 모습 그대로 이번엔 욕실로 들어가서 물을 틀었지요.

그러나 역시 세수하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니까 허리가 못 버티네요.

 

그래서 여태 그랬던 거처럼 일자로 조심스럽게 다리 구부려서 샤워기 밸브를 돌리고는 수도꼭지를 들어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게끔 해봅니다.

어차피 발가벗은 몸이니까 쏟아져 내려도 버릴 옷도 없잖아요.

 

그 순간에 소위 말해서 샤워기 써서 '냉찜질 / 온찜질' 했던 겁니다.

그걸 마치고서 방으로 들어오려는데 대갈통을 비롯하여 온몸이 젖었으니 큰일이었습니다.

 

고개를 확 젖힐 수도 팔을 길게 뻗어 이리저리 닦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는데 문득 기각 막힌 묘안이 스칩니다.

- 그렇지! 두들기는 거야 / 마구 때리는 거야 -

손목도 제대로 못 썼는데 수건을 들고서 이리저리 쳐다보니까 이제는 제법 요령이 생깁니다.

 

그런 방식으로 위아래에 마른 기운 넣고서 방으로 들어왔지요.

그렇게 방에 들어왔는데 아까는 못 봤던 게 방바닥을 구르네요.

녀석이 어떻게 떨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벽 쪽에 꽉 붙었어야 할 보일러 조절기가 방바닥에 덩그러니 놓였습니다.

 

놈을 겨우겨우 주워서 얼른 벽 쪽에 대고 꽂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말도 안 됩니다.

놈에겐 엄청나게 많은 전선이 깔렸는데 어떻게 방바닥에 떨어질 수가 있죠?

그 많은 전선은 어떻게 되고요.

 

놈이 무선인가??? 궁금해서 미치겠네요.

잠시 다시 가서 뗐다가 붙여 볼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히히^^^ 제 기억이 착각했습니다.

아까 놈이 방바닥을 굴렀던 게 아니고 그 자리서 빠져나와 덜렁덜렁했던 거였네요.

그리고 전선들이 모두 밖으로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달랑 두 줄만이 인입선으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방금 그 부분 붙은 비닐 전선(두 가닥)이 밖에까지 뻗었기에 뭉뚱그려서 안으로 쑤셔 박고 조절기를 다시 걸었답니다.

 

어쨌든 그러고서 몸이 좀 쉬어야겠기에 이부자리를 다시 펴려는데 아까 이부자리 갤 때 제대로 못 챙겼던 마우스 같은 게 빠져서 방바닥을 구릅니다.

돌이켜보면 마우스 구른 것과 보일러 조절기 사이를 착각했네요.

 

이부자리 다시 펴는 것도 개는 거만큼이나 아프고 힘들었어요.

허리나 목 자유자재로 펴거나 구부릴 수 없었으니까!

 

누워서도 아픕니다.

반드시 누워도 보고 토끼처럼 구부려도 보고….

이래도 저래도 아픕니다.

 

그러는 순간에 어디선가 전화가 왔어요. 그 전화 받으려는데 몸이 말을 안 들으니까 또다시 텔레비전 넘어뜨립니다.

받아보니 여동생입니다.

 

이렇게 아픈 뒤로 처음으로 입을 여는데 숨이 가빴던지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다 새버립니다.

쉰 목소리로 겨우겨우 설명하고서 자리에 다시 누웠는데 안 죽을 줄 알았는데 정말이지 죽겠습니다.

 

아플 때마다 그 순간 비켜보려고 제아무리 다른 상상 해보려도 아파서 죽겠습니다.

 

- 아이고 틀림없다 / 근육이 뭉쳤나 보다!!! -

왜 있잖아요? 허리 삐끗하거나 손목/발목 삐끗했을 대도 약국에 가면 '근육이완제' 주잖습니까?

 

무릎 굽히는 방식으로 휴대전화와 지갑 챙기고서 약국을 찾아 나섭니다.

우리 아파트 약국이니까 멀다고 해도 백 미터 안쪽에 있어요.

 

가장 먼저는 뒷짐 자세로 최대한 등 쪽 아픈 부위가 흔들리지 않게끔 팔을 높이 올린 뒤 숨 가쁘지 않게(기침이 없게끔) 조심조심 약국으로 갔습니다.

'두 가지를 식사 후에 각각 한 알씩' 먹으라면서 3일 치라고 합니다.

내 아픈 거에 비하면 너무나도 친환경적 비용(6천 원)을 달랍니다.

 

그 약을 먹기 위해서 오늘 아침은 오후 세 시를 약간 넘어서 바로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아까 전화했던 여동생한테 인제는 약 먹었으니 안심하라고 문자도 넣었답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이상은 어떻게 할 수도 없었어요.

약 먹고서 두 시간쯤을 누웠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어머니께서 시골에서 뭔가를 잔뜩 얻어서 올라오는 중인데 당장에 손수레 끌고서 밑으로 내려오랍니다.

좀 전에 전화 받는 손길도 / 그 전에 또 자리에서 일어나는 포스도 모두가 제법이었던 걸 생각해서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는데 아직은 안전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머니 걱정만은 끼치고 싶지 않네요.

1킬로그램도 안 될 손수레를 끌고서 아파트 문 앞에서 동생한테 어디쯤이야고 전화했더니 이미 경비실 앞에 와있다네요.

마음이 급해졌어요 / 그래도 어머니께 안 들키려면 최대한 안정된 자세를 가져야 하잖아요.

 

아파트 마당에 쌀자루며 호박이나 감등 이것저것이 놓였습니다.

동생 놈은 차 세우려고 주차장으로 갔다네요.

 

쌀자루가 20킬로그램도 안 될 텐데 그걸 고작 10센티미터 안팎의 손수레에 못 올립니다.

그 정도야 테 안 내고도 저는 가능할 줄 알았어요.

그러나 '악!' 앓는 소리 토하면서 그까짓 것 하나 주체를 못 합니다.

 

그 꼬락서니 경비아저씨가 보노라니 기가 찼던지 그분이 오셔서 벌떡 들어서 손수레에 올립니다.

그러면서 저더러 한꺼번에 다 옮길 게 아니라 두 번에 걸쳐서 엘리베이터까지 옮기라고 조언까지 해주네요.

 

제가 엉금엉금 수레를 끄는데 차마 그대로 둘 수 없었던지 경비아저씨께서 나머지 큰 광주리를 덜 쳐들고서 성큼성큼 아파트로 들어갑니다.

- 아이고 고마우셔라~ -

제가 아파트 현관까지 끌고 왔을 즈음엔 동생 놈이 차 세워두고서 성큼성큼 들어옵니다.

 

산재로 절뚝거리는 동생 놈인데 오늘은 '한글날이 공휴일과 겹쳐서' 일터에 안 간 모양입니다.

녀석 덕에 지금 제 곁에는 '가래떡 봉지 하나'와 '홍시 몇 개'가 제 손길을 기다리지요.

 

그리고 오늘 밤은 일찌감치 초저녁에 두 끼 채를 채웠답니다.

약을 먹어야 하니까

제가 성인 되어 광주 나와서 제일 많이 먹었던 약이 바로 이런 부류의 '진통소염제'입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 지게를 많이 져서 허리가 나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그래도 그 시절 그립습니다. -

- 마대 가득 고구마 담아서 수 킬로 멀리 산밭에서 바닷가 집까지 지고 내려왔으니….-

 

- 그 시절에 어쩌다가 손수레 빌리면 양쪽 바퀴 뒤쪽의 몸통 아래쪽 구부러진 자리에 갈지자로 통나무 넣어서 브레이크 만들었던 것도 그립습니다. -

- 어쩌다가 경운기를 얻으면 대가리의 큰 쇠바퀴서 손잡이 빼고서 코(트로틀 밸브)를 연 뒤 대여섯에서 여남은 바퀴까지 강력하게 돌려 그 쇠바퀴에 탄력이 붙으면 코를 놓아 시동 켰던 것 참으로 그립습니다. -

- 경운기 운전할 때 회전하려면 평지나 내리막길에선 도는 방향과 반대 놈 브레이크 잡고 올라가는 길에서 도는 쪽 브레이크 잡았던 사실이 너무너무 아득하구나! -

 

누리 벗님들 / 류중근이 이제 제 동생한테 문자 넣었던 거처럼 며칠 후면 훨훨 날 겁니다.

이 이 순간도 좋아져서 이렇게 글이 써지잖습니까?

응원해주십시오! 이 글을 보신 것만으로도 그대 복 받을 거예요.

 

- 아차! 그리고 좀 전에는 미끄러운 다우다 껍데기 이불을 캐시미어 껍데기 이불로 바꿨답니다. -

 

사랑합니다 /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오후 11:00, 2022-10-10 류중근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