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종합 게시판 알리는 글 상위 홈으로
게시판 관리

대책 없이 무작정 기다렸는데 얼떨결에 해피엔딩 안겨주더라! (Ⅰ)

 

며칠 전 그날은 몹시 추웠다.

올 들어선 아마도 제일 추웠을 터다.

 

그날 나는 한기를 느꼈다.

작년에도 겨울철엔 내복을 입었을 터지만, 그날 밤 잠자리에서 아랫도리 말고 윗도리까지 챙겨입고서 잠자리에 들었던 건 내 기분에 몇 년 만인 거 같았다.

틀림없이 작년 겨울철에도 입었을 거면서-

 

나도 나였지만, 이런 날씨에 연로하신 우리 어머님 무슨 일 겪을지도 모르니까 부단히 신경 좀 썼다.

늘 '온수 전용'에 뒀던 보일러 기능을 '온돌' 쪽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난방 조절'에서 그 온도 역시도 너무 낮아 꺼지지 않을 만큼 돌렸다.

 

그것 가장 낮은 부위에 맞췄는데도 45도가 되기도 하고 30도가 되기도 하고 나중에는 26도가 되기도 하더라.

이것 조절기 돌려서 온돌을 써본 기억이 거의 없기에 도무지 어떤 기준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

 

아무튼, 꺼지지 않을 만큼의 가장 낮은 단위에 두고 잠들었었다.

그때가 어쩌면 새벽 한두 시 아니면 두세 시쯤 됐으리라.

 

그랬기에 늦잠 들었나 보다.

어느 순간에 누군가 마구 내방을 두드린다.

벌떡 잠이 깼는데 어머니 목소리다.

 

문 열고서 나가 봤더니 거실이 너무나도 뜨거워서 보일러를 어떻게 꺼보려고 아무리 해봐도 안 되니까 나한테 얼른 꺼보라고 하더라!

'보일러 조절기'가 내 방에 있는데 뭘 어떻게 했다는 건가???

 

알고 보니 우리 어머니 주방의 싱크대 아래 뻗은 보일러 배관실 밸브를 손댔나 보다.

나는 얼른 내방으로 돌아와서 조절기를 손대어 '온돌'에서 '온수 전용'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랬는데 이 다이얼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더 힘줬다간 아예 부서질 것 같았다.

 

예전에 '철물 용접'을 했었기에 용접한 면이 얼마나 단단한지 잘 안다.

'가접' 후에 용접봉 한 개라도 온전히 다 들어갔다면 그 용접 부위는 제아무리 큰 망치로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다이얼이 돌지 않는 그 자리(기능 선택)의 그 다이얼이 꼭 용접봉 하나를 다 녹여 부은 용접 모재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눌러 봐도 / 당겨 봐도 / 돌려 봐도-]

 

그것 조절기에 해당 보일러 사의 'A/S' 전화번호를 보고는 전화를 넣어볼까도 했었다.

그러나 그날은 주말이었다.

 

- 모두가 쉬고 있을 텐데 이런 날에 불러내선 안 되지!!! -

 

- 에라 모르겠다. 보일러 탓에 얼어 죽을 일도 없을 테고 / 어머니는 또 애초에 보일러보다는 전기장판을 우선으로 치잖아!!! -

 

일단은 기다리기로 했다.

이거하고 어머니가 손댔다는 보일러 배관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성싶은데 내가 괜히 어머니한테 역정 부렸던 게 미안해지더라.

 

그렇게 방치하고서 온전히 하룻밤을 넘겼다.

다음날 날이 새자 AS센터 마지노선이 있었기에 특별히 뭘 바랄 것도 없이 그냥 다이얼을 만져봤다.

 

어차피 안 돌 거지만, 살짝 돌려도 보고 눌러도 보고 당겨도 보려는데 - 따닥^!^

이거 뭐야!! 분명히 무슨 소리가 났어!!!

 

그렇게 조짐을 드러내더군!

꾹 눌렀다가 다시 당기면 금속이 튀는 소리도 같고 플라스틱 튕기는 소리 같기도 하고 분명히 뭔가가 들렸다.

여기서 생각을 다잡고 힘주어 다이얼을 잡은 뒤 선택 지점 방향으로 돌려 보았다.

 

- 찌직^!^ 너무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소리를 내면서 다이얼이 돈다. -

- 그러면서 선택한 지점에서 딸깍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선택 램프에 불이 들어온다. -

- 반대로 돌려도 마찬가지다!^! -

 

- 야^야^야^야^야 -

 

이런 게 기적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

그렇게 절반은 고쳐졌다.

하루가 더 지나니까 그토록 뻑뻑하던 다이얼 회전도 살짝 누그러졌다.

 

오늘은 큰맘 먹고서 조절기를 분해해 봤다.

조절기 몸체와 기판을 고정하는 볼트인지 나사못인지 구멍 두 개가 보이는데 그 나사들 어디로 갔는지 텅 비었다.

일자 드라이버를 써서 틈새에 박고서 서서히 벌려서 드디어 기판을 떼어냈다.

그랬더니 '기능 선택 다이얼' 거리낌 없이 너무나도 부드럽게 잘도 돈다.

 

그쯤에서 '보일러 조절기'를 부숴버렸던 장본인이 어머니가 아니라 나 자신이란 걸 짐작해 본다.

 

몸이 부실한 내가 넘어지는 방식은 따로 규정된 형식이 없다.

가장 큰 건 거기가 집안이든 문밖이든 장소 불문이고 그다음으로는 넘어지는 유형이 무자귀라서 어떻게 넘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앞으로 넘어질 수도 있고-

뒤나 옆으로 넘어질 수도 있다.

 

언제나 복합적이다.

 

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넘어지면서 중력을 거스르고, 관성을 거스르고 고통(상처)이 덜하게끔 그 상황에서도 그 짧은 순간에 최대한 기지를 발휘해서 넘어지고 싶은데 그 역시도 내 몸은 나를 거스르고 만다.

대가리나 무릎이 돌덩이 같은 바닥에 꽝꽝 부딪힐 때마다 나는 거기서 끝나는 줄 알았다.

 

딱 그게 다가 아니고 거기까지 가는 동안 손과 팔다리는 별의별 것을 걷어차거나 잡아 뜯는다.

어떨 때는 텔레비전이 또 어떨 때는 모니터가 그것도 아니면 전등과 방문, 화장실 문 혹은 보일러 조절기까지-

 

벽에 걸렸던 보일러 조절기가 바닥으로 나뒹굴었던 순간이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됐는지 모르겠다.

오죽했으면 통 안에서 단단히 잠겼어야 할 나사 두 개가 떨어져 나갔을까?

 

그것 뚜껑이 없을 때는 마구 돌지만, 막상 뚜껑을 마저 끼우고 나면 여전히 도는 게 빡빡하기에 오늘 두 번째 뜯었을 때는 그것 다이얼을 빼서 부엌의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이고 못 쓰는 일자 드라이버를 달궈서 다이얼 테두리에 빙 둘러서 일정한 간격으로 칼집을 냈다.

그러면 아무래도 마찰계수가 오를 테니까^ 마찰계수가 높아야 가볍게 돌릴 수 있지!

 

 

~ 사랑 ~